"성냥 사세요... 따뜻한 성냥 사세요..."
안데르센의 단편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하는 말이다.
19세기. 12월의 마지막 날. 누더기 차림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어린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성냥팔이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소녀를 보고 대부분 지나친다. 그렇게 소녀는 돈을 벌지 못해,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맞는 것이 두려워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서성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냥을 켜 잠시 동안 자신이 꿈꿔왔던 환상을 보면서 기뻐한다. 추위 속에서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어릴 적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의문을 가졌었다. 왜 소녀는 라이터라는 편리한 물건을 놔두고 추운 날씨에 성냥을 팔고 있는 걸까? 왜 소녀는 성냥을 통해서 환상을 보는 것일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저 불쌍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았을까?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작중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도와주지 않았던 자신들을 후회한다. 자신들이 조금만 도와주었다면 성냥팔이 소녀는 추위 속에서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다 타버려 재가돼버린 성냥. 그리고 눈에 덮여 얼어버린 시체.
보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할 정도로 잔혹한 죽음. 하지만 이상하게 주검이 되어버린 소녀의 얼굴을 살아생전에 짓지 못했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기 직전 자신을 아껴주었던 할머니의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을 쫓아가다 자신을 안아주는 할머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제발 절 두고 가지 마세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살아생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죽어서야 마주한 성냥팔이 소녀. 눈보라보다 차가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찾은 이 이야기는 어른이 된 나에게 더 이상 잔혹한 이야기도 아니고, 남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회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회는 그러한 자신을 비웃듯이 차갑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 작중에서 성냥팔이 소녀를 그렇게 괴롭혔던 추위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절망하고, 고통받으면서 환상을 가지게 된다. 추위와 외로움을 버티기 위해 가지고 있던 성냥을 사용하고, 그렇게 보게 되는 환상 속에서 허우적댄다. 성냥을 켜면서 나오는 백린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다 타버리면 까만 재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서도, 추위 속에서 작은 성냥에 의존하다 쓰러진 성냥팔이 소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이 성냥팔이 소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길지 않지만 강력한 충격을 주었던 이 이야기는 나에게 현재 진행형이다. 고민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지금. 그 누구도 길에 대한 해결책이나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허우적대며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성냥 하나에 의존하면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소녀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스스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사회가 그것을 원하고, 그렇지 못하면 얼어 죽는 냉담한 현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정말 올바른 것일까?"
"정말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허용할 만큼 상냥하지 않다.
가치를 추구하는 만큼 그것과 맞지 않는 것은 도태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평 속에서 불평등을 강요하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약하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 그리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조금은 이루어지는 것을 희망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모습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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